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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번 직업을 바꾼 남자

87학번인 나 대학시절에 분신자살을 꿈꾸다!

by 따뜻한카리스마 2008. 8. 20.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대학을 어렵게 들어갔다.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학비를 벌어야했기 때문에 야간을 선택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서 술만 마셨던 것 같다.

거의 매일 마셨다. 정말 죽도록 마셨다.

지금은 소주 한 병도 제대로 못 마시지만,
그땐 7병까지 마셔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완전히 미친 짓이었다.

너무도 나 자신이 싫었다. 그렇게 술로 나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봉제공장 시다바리로 첫 직장을 다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싶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봉제공장의 시다였다. 잡무를 하는 사람을 ‘시다’라고 불렀다. 사실 일본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봉제공장의 거의 모든 단어들이 일본어에서 유래된 말이 많았다. (영화 ‘친구’가 히트하면서 다들 한 번씩 들어봤을 대사가 떠오른다. 나 닮은 배우가 하던 말 ‘내는 니 시다바리가?’ 만일 여기서 장동건이 표준어로 ‘나는 당신 보조원입니까?’했다고 생각해봐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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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중에서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청년 전태일역의 홍경인,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노동자 전태일은 나라를 위해서, 분실자살 했건만, 나는 나 자신이 너무도 싫어서 분실자살하고 싶었었다.)

나는 87학번이다. 그 당시만 해도 대학을 다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같다. 대학생에 대해서 다들 부러운 시각을 많이 가졌다.

하지만 입사 할 때 대학생이라고 밝히지는 않았다. 당시에 데모하는 운동권 학생들이 고의적으로 산업현장에 숨어들어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대학생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이력서를 똑같이 제출해서 정식으로 입사했다.

학교 다니는 내도록 일만 했다

그러나 1개월가량 근무하다가 내가 대학생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사장은 당장에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데모하고 파업주도하는 학생이 아니라 형편이 어려워서 일하러 온  것뿐이다’라고 해명하고야 겨우 공장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월급은 대략 20여만 원 가량 되었다. 지금으로 보면 작은 액수지만 당시로 봐서는 제법 큰돈이었다. 사립대학 등록금이 50여만 원 정도였으니 아르바이트생의 급여로서는 많은 돈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돈을 벌어보았다. 2달 후에는 새로운 회사로 옮겼다. 산타클로스 장식품을 만들어 해외로 수출하는  회사였다. 이곳에서 6개월간 일을 했다. 그리고 다시 우체국에서 2개월간 일했다. 학교 다니는 내도록 그렇게 일했다.

학생운동에 눈을 뜨며, 사상을 공부하다

그 사이 1년의 시간이 다 흘러가고 있었다. 학교 공부는 여전히 무관심했다. 학생운동에 조금씩 눈뜨기 시작하며 일과 학생운동을 병행했다. 공부는 딴전이었다. 사회체제의 무관심에 국가의 정책에 대한 반발심 그리고 가진 자의 횡포를 알게 되었다. 분노가 들끓었다. 아주 짧은 시간만으로도 깊이 있게 학생운동에 빠져 들었다. 2학년이 되어서는 총학생회의 간부 직책을 하나 얻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날마다 최루탄을 뒤집어썼다

사상 공부를 시작했다. 모임과 토론을 많이 가졌다. 부산 뿐 아니라 타 지역 대학의 모임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내 안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거리로 나가기 시작했다. 서면으로, 부산역으로, 남포동 거리로 나섰다. 부산 뿐 아니라 서울까지 지원 시위를 나섰다. 날마다 최루탄에 지랄탄에 쫓겨 다녔다.

분신자살을 꿈꾸다!

나처럼 단순한 사람들은 그렇게 폭발하기가 쉬웠다. 그 때 처음으로 분신자살을 실행할까 고민했다. 국가를 위해서, 사회 변혁을 위해서 목숨을 끊고 싶었다. 정말 치기어린 열정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숨겨져 있었다. 아무래 노력해도 앞으로 잘 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부하는 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인맥도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 수 있을지조차 의문스러웠다. 너무도 암울한 미래의 그림만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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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에 청년 전태일이 분실자살하는 모습, 청년 전태일은 사실 1948년생이다.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분신자살함, 열악한 노동현실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큰 역할을 한 노동운동가)

분실자살의 이면에는 내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숨겨져 있었다.

그런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혐오스러웠다. 죽고 싶었다. 그런데 만일 불투명한 내 자신의 미래로 목숨을 끊는다면 부모님께 불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의명분을 찾기 위해서 ‘분실자살’이라는 것을 꿈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도 그런 생각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었겠지만 그 때는 물불가리지 않고 ‘내 한 몸 다 바치겠다! 라는 생각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대학 2년 동안 도서관에 1시간도 앉아본 적이 없었다. 수업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나의 대학생활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대단히 실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교 측 지원으로 경주에 캠프를 갔다. 그런데 술에 취한 운동권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막말하고, 술 더 먹게 돈 내놓으라고 이야기하는 추태를 보았다. 지나친 폭력 사태도 싫었다. 더불어 여러모로 운동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실망하는 일이 생겼다.

운동권의 학생들도 정치인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망하다

그들 역시 정치인들과 하는 행태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운동에 환멸감이 느껴졌다. 학교 측에 돈을 요구하고, 술취해서 행패부리는 몇몇 선배를 보고 실망했다. 학생운동을 그만두었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막막했다. 게다가 집안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다음 학기의 등록금 조차 못 낼 형편이었다. 아버지가 군대 이야기를 꺼내셨다. 평소에 말도 잘 안 듣다가 그날은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직업군인 생활을 선택했다.

생각 외로 군대가 너무 편했다. 더 이상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아서 좋았다. 더 이상 가난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서 좋았다. 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좋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 기뻤다.

때때로 인생을 깨끗하게 비울 필요도 있어...

덕분에 깨끗한 백지 상태가 되었다. 거의 2년간을 그렇게 보냈다. 멍청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깨끗이 비울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남은 군 생활에서 책을 보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안정적인 직업군인으로서의 생활을 계속할까도 고민해봤지만 그것은 아니다 싶었다. 5년가량의 군 생활을 접고 학교로 복학했다. 착실하게 월급을 저축한 덕분에 부모님께 보탬도 드리고 등록금도 마련할 수 있었다. 온가족이 모두 고생한 덕택에 집안 형편은 조금 나아졌다.

졸업 후 나는 무능한 ‘거품세대’로 불렸다!

학교로 들어섰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사회적 분위기도, 학교 분위기도 모두 바뀌었다.  최루 가스 냄새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학생들은 학생 운동보다 학구열에 불타는 듯이 보였다. 입대 전에는 공부하던 학생들이 매국노 취급을 받았는데, 이제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이 바보 취급을 받는 시대로 바뀌어 있었다.

당시 공사나 대기업에서 입사 시험을 치루는 경우가 많았다. 단골 문제로 나오던 시사문제 중에 하나가 ‘버블제너레이션’이라는 단어였다. 나처럼 학교 다닐 때 공부안하고 시위만 하다가 사회 나와서 적응하지 못하는 86,87,88학번 세대를 일컬어 ‘거품세대’라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지나고 보니 다소 인위적으로 만든 신조어였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그렇게 386의 마지막 세대가 되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할 수 없던 혼미한 시대였다

그래도 그 땐 그 만큼 세상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불타는 젊음이 있었다. 아름다움이 있었다. 사회의식도 있었다. 다만 우리들은 너무 어렸다. 어리석은 면도 많았다. 도서관 책상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혼미한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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