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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번 직업을 바꾼 남자

내 아버지를 통해 바라본 한국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다

by 따뜻한카리스마 2009. 5. 12.

올해 어버이날 잘 보내셨는지요?
부모님께 감사의 말씀은 전하셨는지요?
저는 입 밖으로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면서도 말로 꺼내지 못하고 편지로 대신했습니다.

사실 어머니에게는 장난스럽게다로 말을 건넜는데, 아버지에게는 말로는 건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와 달리 왠지 어색하고 서먹함이 남아서 일까요? 도대체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족 구성원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존재일까요?

어버이날을 맞아 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한경에 실렸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어버이날에 맞춰 실린 것 같습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운영하는 한경비즈니스에 보냈던 원고입니다. 읽어보시고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혹자는 한국의 아버지가 가장 불쌍하다고 한다. 사회에서는 뼈 빠지도록 일하지만 사실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집안에서는 자신의 냉엄한 처지를 차마 말하지 못한다. 오히려 권위적이며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군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년에는 가족들로부터 사랑 받지도 못하고 울타리 밖에서 겉도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버지라는 존재가 아닐까.

내 아버지는 무척 엄한 분이었다. 게다가 주사(酒邪)까지 있었다. 평소에는 인정 많고 온순하신 분이었다. 하지만 술만 드시면 밤에는 난폭자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나는 크면 결코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곤 했다.

아버지는 종손으로서 부유하게 성장했다. 유모도 있었고, 아버지를 돌봐주는 몸종까지 별도로 있을 정도였다. 모든 면에서 풍족했다. 그래서 일부 친지들은 너무 귀하게 커 세상 물정을 모르고 성장했다고 말한다. 당시에 대학물까지 먹은 소위 ‘인텔리’였다. 하지만 끝까지 학위를 마치지 못한 것이 아버지의 첫 번째 실수였다. 학업을 중단하고 월남전에 참전했다. 그렇지만 사소한 잘못으로 불명예제대까지 당하게 됐다. 아버지에게 닥친 젊은 날의 가장 큰 불행이었다. 그래도 의연하게 일어났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 후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오명을 안긴 상사를 죽일 것이라며 날마다 칼을 갈았다. 칼을 들고 월남전 용사들이 돌아오는 인천 앞바다에 죽치고 앉아 그 사람을 기다리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술에 절어 사셨다. 당시의 치욕에 분노하며 수년간을 폐인처럼 살았다. 그 이후로도 10여 년간 제대로 된 직장도 다니지 않았다. 이후 하시는 사업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그 때문에 우리 가정은 늘 빈궁했다.

환갑이 지나고 아버지는 극도로 신경이 쇠약해졌다. 육체적으로 기운이 한풀 꺾였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극도로 쇠약해졌다. 날마다 악몽에 시달려 잠에 들지 못했다. 깨어 있는 시간에도 불안증에 시달렸다. 급기야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병문안을 갔다가 나약해진 아버지의 몰골에 울컥했다. 차마 아버지 앞에서 울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목 놓아 울고 말았다.

다행히 내가 결혼하고 손자가 생기면서 완전히 회복했다. 칠순이 넘도록 일도 했다. 고희연을 대신해 가족 여행을 갔다. 그때 아버지가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전에는 빨리 죽어야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너희들이 결혼해 잘 살아가고 있고 또 아이들 커가는 것을 보니, 이젠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더 오래 살아야겠다”라는 말이 귓전에서 계속해 울렸다. 나에게 지금까지 해 주신 최고의 칭찬이었기 때문이다. 마음 한편에 묵직하게 남아 있던 아버지와의 한을 푼 자리가 아니었나 생각됐다. 아버지를 돌이켜보면 누구보다 온순하고 따뜻했던 온정도 떠오른다.

내가 군대 있을 때였다. 휴가 나와서 보니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들이 많이 보였다. 어머니에게 무슨 표시인지 물어보았다. 내가 휴가 나오는 일자를 아버지가 체크해 놓고 기다리며 표시해 놓은 마크였다고 한다. 말씀은 안 해도 자식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랑은 늘 해 오셨던 것이다. 그러한 보이지 않는 온정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수되었다.

사실 아버지도 열심히 살려고 애썼으나 사회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소외받아 오지 않았나하는 안타까움도 든다. 아버지로부터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의 뒤안길이 투영된다.

어머니가 태생적으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아버지는 태생적으로 소외받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아버지가 된 지금에야 새삼스럽게 느낀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족에게 있어서 그렇게 ‘그림자’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족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조연이었다. 이제 나도 그렇게 가족의 그림자가 되어가고 있다.

* 아버지 관련기사:
가족내 '아버지'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아버지를 통해 바라본 아버지란 존재?
아버지는 가족에게 보이지는 않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
아무리 미워했던 사람이라도 나 자신을 위해서 용서하자
술취해 길바닥에 엎어져 있는 아빠가 부끄러워서 모른 척 했어요 
말대꾸하면 호적 파겠다고 하는 아빠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난한 엄마 아빠가 너무 미워요 

* 여러분이 생각하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를 주는지 궁금합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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