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학벌차별의 취업전선에서 살아남은 두 지방대생의 취업성공전략
지방대생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제갈현열의 취업스토리
한 강사 분으로부터 혈기왕성한 젊은 강사 한 명을 알게 됐다. 제갈현열이라는 다소 독특한 이름을 가진 젊은 청년이었다. 현열이라는 강사와 공동으로 책도 내고 사업도 같이 하고 있다는 김도윤 강사는 이미 페이스북을 통해서 알게 된 사이여서 세상 참 좁다는 생각도 든다.
나를 찾아왔던 강사 분은 원래 대학교 교직원으로 10년 정도 생활하셨던 분인데 교직원 당시에 만난 학생이 김도윤 강사와 제갈현열이라는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두 명의 졸업생이 자신들도 부산에 강연이 있는데 시간되면 찾아와달라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와의 약속이 있어서 참여가 힘들겠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도대체 이 젊은이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을 가르친 사람들에게까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일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약이 있어 강연 끝까지는 참석하지는 못하겠지만 짧게라도 잠깐이라도 같이 보고 싶다며 강연장으로 향했다. 차가 막혀 직접 인사도 못 나누고 강연도 2,30여분 정도 밖에 듣지 못했지만 강연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선생님이 들려준 여러 가지의 에피소드들이 인상 깊게 남아서 그에 대한 이런저런 사연들을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로 담아볼까 한다.
먼저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다. 선생님이 교직원으로 있었을 때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레젠테이션에 이 제갈현열이라는 학생이 첫 번째 발표자로 올라섰다고 한다. 그런데 허름한 옷차림에 수염까지 기르고 올라오기에 ‘이 학생은 기본이 안 되어 있네. 어떻게 저런 복장으로 입장하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다소 불쾌한 감정마저 들었다고 한다.
그 대회의 발표주제가 꿈이었다. 자신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7분 동안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현열이라는 학생이 자신의 꿈에 대해 열정적으로 내뱉는 순간 처음부터 완전히 매료되어 모든 평가서를 엎어 버렸다고 한다. 이유는 선생님에게도 잊혀져 있던 꿈이 불타오를 정도로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 역시도 ‘도대체 어떤 학생이었기에 그랬을까’라는 호기심으로 강연장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는 재학시절에 광고홍보학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특별히 학교 공부에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신이 기획한 한 작품에 대해 세상에 이렇게 못하는 경우는 없다며 이건 빵점짜리 기획서라고 욕하는 강사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일념 하에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A+ 학점을 받고 의기양양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자 분은 지금까지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아 평점 평균이 4.5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학교를 10년을 다니며 학점 세탁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점수는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괴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렇게 학점도 좋았던 사람이 공모전에서 한 번도 입상해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 바로 이거다. 내가 공모전에 입상해서 보기 좋게 콧대를 꺾어보자.’라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한다. 일단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발표하기 위해서는 책부터 읽어야 한다는 한 교수님의 말에 따라 도서관에 모든 광고, 기획, 마케팅 관련 서적들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2,3시간씩 앉아 있다 보니 엉덩이 땀이 나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땀띠까지 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확고부동하게 계속해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나중에는 땀띠가 터져 진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땀띠가 나기 시작해서 진물이 나기도 했는데 몇 번 그렇게 반복하니 나중에는 굳은살이 박여 더 이상 땀띠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지독하게 읽은 덕분에 도서관에 있던 거의 모든 마케팅 서적을 6개월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헤아려보지 않아서 얼마나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1천권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이론 지식을 무장한 다음에 공모전에 도전했다. 그렇지만 실패했다. 혼자서 몇 번 도전하고 실패한 다음에는 몇 명의 팀을 이뤄 다시 도전했다. 초반에 시행착오가 몇 번 있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는 도전할 때마다 입상에 성공했고 40여 군데에 입상하며 기획분야 최고의 공모전 입상자로 알려질 정도가 되었다. 장관상도 세 번 받았고, 대통령상까지도 받았다.
그래서 이제는 광고회사 인턴이라도 해서 실전 경험과 경력이라도 쌓아보자는 마음을 먹고 한 광고회사의 인턴 모집 소식을 듣고 해당 회사 홈페이지를 찾아가봤는데 아무리 봐도 지원서가 보이지 않아 해당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담당자는 대뜸 대학이 어디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계명대학교라고 하자 지원 자격이 없다며 다른 어떤 조건도 물어보지 않는 것이다. 지원자에게 어떤 공부를 했으며, 어떤 능력이 있는지 관심을 보이진 않더라도 기회를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이 회사 정말 인재를 못 알아보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회사에서 일을 해봐야 인정받기도 어려울 것이고 배울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모르고 들어갔다가 고생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불과 2,3개월 후에 더 큰 광고회사에 입사할 기회가 생겼다. HS Ad라는 서열 3위의 광고회사였다. 하지만 그 길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 면접장에도 평소와 같은 복장을 입고 수염 기른 상태 그대로 갔는데 면접관들이 놀랬다. 면접관들이 30여명의 지원자가 있었는데 유일하게 평복 차림으로 찾아온 지원자라고 핀잔을 줬기 때문이다.
면접 질문 중에 당신이 지원자 중에 유일한 지방대생이었다. 광고회사는 명문대나 해외 유학파 출신의 높은 학벌을 선호해서 차별이 있는데 그런 차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제갈현열은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을 다니고 졸업했으니 학벌에 프리미엄이 있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대답했다. 면접관은 그러면 그 말을 당신을 탈락시켜도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제갈은 그것은 기업의 선택이라고 대답했다. 명문대학생을 칼로 비유하자면 소위 수백만원대의 스위스제 명품 칼 정도가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자신 같은 지방대생이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식칼에 불과하지 않겠느냐. (원래 그는 과도라고 비유했으나 내가 생각해볼 때 식칼이 더 어울린다고 판단되어 변경해본 것이다. 일전에 재야의 고수를 식칼로 비유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집에서 요리할 때 그런 수백만원짜리 명품 칼을 휘두르며 요리하느냐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대부분 그냥 식칼을 가지고 사용할 것이다.
만일 지금 스위스제 명품 칼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명문대학생을 선택하길 바란다. 하지만 만일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두루 사용할 인재가 필요하다면 나를 채용하길 바란다.
그 대답 덕분이었는지 7명의 인턴 중에 제갈이 유일한 지방대생으로서 최종 합격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인턴 생활이 그리 순탄치만 않았다. 별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허드렛일만 하며 보냈다. 그런데 하루는 담배를 피고 있는데 국장님이 지나가기에 인사를 드렸다. 그랬더니 국장이 현열을 알아봤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때 부장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국장이 ‘이 친구에게 일 좀 맡겨봐. 잘 할 거야.’라고. 어떻게 보면 형식적인 이야기였는지도 모르는데 부장은 나에게 80억짜리 광고 프로젝트를 주면서 ‘이 정도면 혼자 처리할 수 있겠지’라고 맡겼다.
그리고 1주일 후에 PT를 준비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PT일이 되자 국장부터해서 회사에서 중요한 모든 사람들이 참석해서 내 PT를 보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동안 공모전에서 갈고 닦은 실력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6명의 명문대와 해외유학파들을 물리치고 제갈이 정식사원으로 최종 입사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인사부서에서 토익점수가 누락됐다고 연락이 왔다. 제갈이 토익시험을 본 적이 없다고 하자 담당자들은 다소 난감한 표정을 보였다. 제갈도 미안한 마음에 형식상으로라도 점수를 맞춰 볼까해서 토익점수가 몇 점 이상 되어야 하느냐고 물어봤다. 870점 이상이어야 한다는 말에 도저히 그 정도는 받을 자신이 없어 앞으로도 토익 시험 볼 생각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채용결정이 사장님까지 이미 결정된 상황이라 인사부서도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당신은 당신의 역량으로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가.
아니면 온갖 학벌과 어학점수와 자격증으로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는가.
청년 제갈로부터 인생을 배운다.
* 이 글은 무려 10여년전인 2013년도에 제 일기장에 실렸던 글입니다.
편입을 고민하는 학생에게 답변글을 주려다보니 당시 청년 제갈현열이 떠올라 늦었지만 취업전선에서 어려움을 겪오 있을 지방대생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지금이라도 블로그에 글을 올려봅니다.
* 다음 편에서는 당시 같은 자리에 있던 김도윤 작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10여년이 흐르고 보니 그 역시도 놀라울 정도로 변신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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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코치 정철상은...
20여년의 MBTI강사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인재개발연구소 대표로 대구대, 나사렛대 취업전담교수를 거쳐 대학, 기업, 기관 등 연간 200여 회 강연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진로백서》, 《서른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아보카도 심리학》 등의 다수 도서를 집필했다. 대한민국의 진로방향을 제시하며 언론과 네티즌으로부터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라는 닉네임을 얻었으며 ‘정교수의 인생수업’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대한민국의 진로성숙도를 높이기 위해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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